20대 '천재교수'에서 '외설작가'로 낙인 찍혔던 비운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1951~2017)가 9월 5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광수 전 교수는 그림과 시에 뛰어났으며, 28세의 나이에 홍익대에서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 교수'라고 불리며 학계의 기대를 받았고 33세에 연세대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1984년 연세대에 교수로 부임했고, 1989년 에세이 ‘나는 야한여자가 좋습니다’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즐거운 사라' 같은 작품들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성애문학'에 작가 스스로도 집중하면서 마광수 문학의 다양성이 묻혀 버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1992)에 붙여진 '외설적인 문학'이라는 주홍글씨가 붙는 것은 물론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되기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일까요? 이후 1992년 출간한 소설 즐거운 사라’로 풍파를 겪었습니다. 당시 이 소설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기소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소설 즐거운 사라의 내용은 사라라는 대학생의 개방적인 성생활에 대한 내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면 별것도 아닐텐데, 그 당시 대학교수가 외설적인 내용의 소설을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해직과 복직, 휴직 등을 반복하였던 마광수 교수는, 지난해 8월 연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도 외설 논란으로 해직당한 경력 때문에 명예교수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1월에는 등단 40주년을 맞아 시선집 ‘마광수 시선’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등당 40년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나름대로 작품들을 통해 한국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는데, 막상 평론가들은 비난만 했지, 정식으로 평가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일생 성(性)이라는 주제를 파헤쳐보려고 애를 썼는데 남는 게 없네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 인터뷰에서 마광수 교수는 퇴임 이후의 생활에 대해 “할일도 없고 갈데도 없고, 제가 독신이니까 더 외롭고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수입이 줄었고, 인세는 거의 없습니다. 책은 안 팔린습니다”며 “우울해지지만, 별 방법이 없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원기를 회복하고 싶습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원인이 마광수 교수가 자살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와 결혼한 마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 이혼했으며, 자녀 또한 없습니다. 노모는 2015년 별세했고, 유족으로는 누나가 있다. 고인의 유족은 "오늘 돌아가셨다. 그동안 아파서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이다"라고 짧게 사인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유산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넘긴다는 내용과 시신 처리를 그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을 담은 유서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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